임지지 개인전 《야회-거울 쓰기》는 세 개의 영상과 일련의 조각들을 통해 이단적 존재들의 밤의 연회, ‘사바트'에서 펼쳐질 법한 비밀스러운 행위들을 암시한다.✶ 각 영상에는 사술로 통칭할 수 있는 거울쓰기, 사특한 기술,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비행이 등장한다. 이때 사술은 특별한 장소가 아닌 평범한 일상과 반복되는 집안일 사이에서 불현듯 출몰하며, 여자의 노동과 연회 사이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영상 〈거울쓰기 Mirror Writing〉의 여자가 낮잠에 빠져들고 깨어남을 반복한다.➹ 낮잠 자는 여자의 얼굴 위로 팔리지 않아 쌓여 있는 옷들이 지나간다. 넘쳐나는 값비싼 옷은 모두 불태워 그 희소성을 회복해야만 했다. 여자는 ‘거울 속에서도 옷은 옷'이라는 문장을 반대 방향으로 쓴다. 그녀는 옷이 마녀와 같은 운명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음이 증폭될수록 여자의 숨통이 조여온다. 내내 여자를 낮잠에서 깨우던 세탁기의 익숙한 알림음은 끝으로 갈수록 여자를 다시 잠에, 사술에, 금지된 연회에 빠져들게 하는 음으로 변주한다.✦
한편 사술은 마녀재판의 단골 주제였다. 하지만 애초에 마법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술을 향한 비난의 근거는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모든 형태의 (특히 여성) 프롤레타리아트 저항은 사술로 치부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여자의 일상적인 행동마저 사술이 될 수 있었다. 싱글채널비디오 〈사술 A Private Skill〉은 끊임없이 국수를 먹는 여자를 보여준다. 여자는 오로지 다음 국수를 먹기 위해 설거지를 한다. 이때 거품 묻은 여자의 손 위로 사술이 스쳐 지나가고, 설거지와 사술의 경계는 흐려진다. 〈모든 비행은 삿되다 Every Flight Is Evil〉에서는 여자의 두 손에 담겨있던 달걀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달걀들은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하고, 처참하게 깨질 줄 알았던 것들이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르며 본격적인 비행을 시작한다.
사술을 의미하는 ‘witchcraft’는 마녀 ‘witch’와 기술을 뜻하는 ‘craft’가 합쳐진 단어인데, 만약 ‘craft’를 공예품으로 본다면 조각 〈Witchcraft〉는 마녀가 만든 것들, 마녀의 작품으로 읽힐 수도 있다. 전시장에 놓인 수상쩍은 조각들은 대부분 본래의 쓰임이 있으나 밤의 ‘사바트' 혹은 〈The (three) Gossip〉(퍼포먼스)에서 새로운 의미와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무언가의 일부들이다.
✶ 봉건 경제가 더 이상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작동할 수 없게 되자, 국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은 획기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경제 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a. 인클로저를 통해 자본가는 공유재를 빼앗긴 무산계급의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게 됐다. b. 전 세계를 누비며 자행한 대학살과 노예화로 유럽 국가는 대규모의 무임금 노동력을 쌓았다. 당연하게도 노동의 가치는 점차 하락했다. 이제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적인 노동력 통제를 위해 여성은 재생산의 영역에만 머물러야 했으며, 국가는 식민지 노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재생산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야 했다. c. 국가는 교회, 법학자, 판사, 악마 연구가 등과 합심하여 ‘마녀'라는 존재를 디자인했다. 재생산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산파들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여자들이,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고 화형대에 올랐다. 끔찍할 정도로 많은 수의 여자들이 산채로 불에 타 죽었다. 마녀 화형식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광장에서 치러졌다. 눈앞에서 불에 타는 친우를 보는 다른 여자는 입을 다문 채 몸을 사렸을 것이다.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Silvia Federici, Caliban and the Witch) 불탄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여성, 성적 존재, 섹슈얼리티에 다름 아니었다.
✶ “사실 마녀들은 “뒤집힌 세상"의 살아있는 상징이다. 중세 문학에서 마녀들은 사회질서의 전복이라는 천년왕국설의 열망과 연관된 전복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Federici)
➹ 여자는 일상적으로 거울쓰기를 연습한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오른쪽 방향이 아닌 왼쪽 방향으로 글자를 뒤집어쓰면 거울에 비친 문장들은 똑바로 읽힌다. 거꾸로 쓴 문장들처럼, 〈거울쓰기〉에서 여자의 모습은 종종 편집을 통해서나, 실제로 거울을 배치함으로써 반사된 이미지와 함께 등장한다. 화면을 반으로 접는다면 여자 위에 (반사된)여자를 꼭 맞게 포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주 보는 두 여자는 계속해서 조금씩 어긋난다. 여자는 자기 몸을 가지고 거울쓰기를 한다. 낮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여자의 동작들은 통째로 뒤집혀 있다. 거울을 통해 본 문장들이 그러하듯, 뒤집힌 거실에서 여자는 거꾸로 일어섬으로써 똑바로 선다. 여자는 문장으로-손으로-쓰면서 / 동작으로-온몸으로-일어서면서 거울 쓰기를 한다. 여자는 거울 속에서만 똑바로 쓰고, 거울 속에서만 똑바로 선다. 여자가 거울쓰기를 연습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전두엽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빈치의 경우처럼 단지 옷소매를 더럽히지 않기 위함일 수도, 혹은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 영상 〈거울쓰기〉 전반에 걸쳐 옷을 세탁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낮잠을 자는 여자는 옷의 꿈을 꾼다. 넘쳐나는 옷들이 더 비싼 가치를 위해 비밀리에 소각된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2018년까지 5년 간 약 1천 328억 원 규모의 재고를 비밀리에 소각해 왔다. 소각의 이유는 재고가 늘어나면 상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과 재고 자체가 도둑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러 환경단체의 항의가 언론에 보도되자 버버리 측은 2018년 재고품 소각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재고를 몰래 불태우는 일은 패스트패션 산업에서도 일어난다. 과잉 생산된 옷들은 자본주의적 가치에 봉사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산채로 불태워지는 여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 한다. 거대한 화형대를 연상시키는 재고 소각로에서 옷들이 재가 된다. 악몽을 꾸듯 눈꺼풀을 바르작거리는 여자의 얼굴에 진실이 커다란 구멍을 뚫는다.
✦ 〈거울쓰기〉의 후반부 :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낮잠에 빠져든 여자 위로 불이 붙는다. 불에 탄 표면이 재가 되어 사라진 자리에 진흙이 잔뜩 묻은 발가락이 꿈틀거리는데, 마치 동물의 내장을 헤집은 듯 기괴하다. 발가락들은 화면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다.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여러 개의 날개가 달린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쾌하게 번들거리는 이 덩어리(?)는 중세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천사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중세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날개로만 이루어진 둥근 덩어리, 날개에는 수십 개의 눈이 달려있다. 악마라고 해도 믿을법한 천사의 외양 때문인지 이때의 천사는 사람들 앞에 등장할 때 마다 반복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