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zizi Gathering 양쪽 젖꼭지를 잇는 선분을 하나 그린다.  오른쪽 젖꼭지에 수직선을 긋는다.  그렇게 직각 이등변 삼각형을 그린다.  빗변의 정중앙을 손톱으로 찍는다.  그곳으로부터 오른쪽 젖꼭지까지 파동 형태로 통증이 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를 상담했던 의사는 안검하수가 심한 남자였다.  내 눈에는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건성으로 물었다.  “파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종파인가요.  횡파인가요.”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종파는 증오.  횡파는 애정입니다.  횡파가 항상 더 많은 피해를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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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자들 The Nocturnalians, 2024
야회 A Night Gathering,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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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Gossip,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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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노푸스, 고독의 해자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Wing Cu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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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를 계속해서 사용했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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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천재
임지지





나는 코피를 자주 흘렸다. 열 살, 열한 살 때쯤 한 번 코피가 터지면 대야로 쏟았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몇 번이나 인두로 작은 혈관들을 지져 지혈했다. 학교에서 난데없이 코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코를 틀어막았고,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간 피가 역류해 입안에 고이면 음미했다. 옥수수 쌀알처럼 작은 이빨 사이를 붉게 물들이며 나는 잘 웃었다. 맹렬하게 나를 놀리고 도망가는 남자애들을 필사적으로 뒤쫓아가 피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창밖으로 방석을 던졌고, 개봉동 외가에 있는 어린 감나무에 목을 맬 거라고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죽음과 가까운지, 그러므로 내가 지금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그보다 더 분명한 시위는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와 구치소 사이로 난 좁은 인도 위를 홀로 걸었다. 인도가 너무 좁아서 맞은 편에 사람이 오면, 한 명이 잠시 차도로 내려서야만 했다. 밤에는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야성이 들렸다. 주로 초등학교 쪽에서였다. 아빠의 사무실은 노후한 구로 공단의 한 ‘종합기계상가’ 건물에 세 들어 있었다. 완만한 나선형 오르막이 바깥으로 나 있는 건물이었다. 나는 한참을 걷다가, 신문지나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얇은 미닫이 유리문 안에 있는 아빠를 봤다. 위태롭게 쌓인 종이상자들에 둘러싸인 남자. 나는 그를 지나쳤다. 가방끈을 쥐고 미끄럼방지 빗금이 새겨진 시멘트 바닥의 완만하게 휘어진 오르막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난 그 순간 알았다. 언젠가 내가 사랑에 빠질 것이고, 누군가 나를 해칠 것이고, 가장 진창에서야 비로소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며, 우는 것이 생업인 양 울다가도, 결국 내가 돌이키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을. 그 나선형의 짐작할 수 없는 어떤 궤도의 시점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겪게 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공원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산책시키는 여자를 만났다. 나는 침 흘리는 시츄 다섯 마리를 차례로 쓰다듬었다.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자가 내게 자신의 집이 어딘지 설명했다. 개를 보러 놀러 오렴. 나는 곧바로 다음날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 여자의 며느리가 나를 들여보내 줬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개들을 둔 채 외출했다. 얼떨결에 혼자 남은 나는 그 김에 마음 놓고 집구경을 했다. 안방에 들어가 며느리의 화장대를 구경했다. 그러다가 문득 열린 창문 밖으로 전망을 봤다. 나는 영영 이 여자의 며느리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개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고, 폭력을 주면 폭력을 받고, 유기되었다가, 다시 거둬지는, 삶이 내게 주는 모든 것을 받고, 그러고도 살아있음에 감격스러워 꼬리를 흔드는 자. 나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기대했다. 상처받길 기다렸다. 네가 나를 해치길 간절히 원했다. 나는 그만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두는 것, 다시 괜찮아져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다. 마비와 무감각이 나를 오래된 정체성에 가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유능한 중독자였다. 저항은 권력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고, 어쩌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순전한 굴종은 아닐까.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선택의 불가능성 뿐이고, ‘벗어날 수 없음’이야 말로 벗어남으로의 유일한 이행이다. 일상의 광풍이 휘몰아쳐 드러난 취약성을 마모시킬 것이다. 삶이 흉포하게 나를 압도하길 바란다. 나는 속절없이 휘둘리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내게 뭔가 일어나 버렸는지 마지막까지 목격해 낼 것이다.


나는 더 큰 흉을 원한다. 덜렁거리거나 설익은 딱지를 쥐어뜯으며, 상처가 그 붉은 속내를 보여주길 원한다. 그것이 아물지 않길 원한다. 끝장나지 않길 원한다. 영원이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너무 많은 말을 늘어놓으며, 결코 이야기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저기 놓인 결말을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이야기가 있다. 제 죽음에 저항하며 이야기는 불멸한다. 따라서 진정한 이야기는 오로지 셰에라자드의 것뿐인데,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이 지속하는 한 끝나지 않으며, 여성 혐오의 화신인 샤흐리야르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셰에라자드의 목숨이 다하고, 샤흐리야르가 배신한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침실 한편에 침상을 깔고 누워, 제 언니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간청하던 두냐자드의 목소리가 여전히 남는다. “이야기를 계속해 주세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죽은 후에도.”



올 한 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파트타임은 전시장 지킴이였다. 나는 어둠 속에 반쯤 잘려, 아홉 시간 반 동안 앉아 있었다. 책 등을 쥐고 있는 내 손등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름이 비어있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나는 근신과 고독의 연막 속에서 가장 야심찬 마음을 먹는다. 어떤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위법한 상속자가 되길. 드러나 있으나 무력한 사생아처럼, 자포자기하고 살롱의 벽지가 된 노처녀처럼. 아무도 모르게 하기. 누구도 내 이름을 알지 못해 어떤 호명으로부터도 부름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는 시간. 이것이 유일하게 진정한 글쓰기의 가능세계. 내가 모든 경쟁으로부터 열외되어 있을 때, 모두가 햇볕 아래 젊은 피부를 전시할 때, 어두운 전시장 구석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내가 주장하는 다원적 형식은 장르 간의 조합이 이루는 경우의 수와 자유시장주의 다양성과는 철저히 무관한 것이다. 다원성은 여성적 자유의 형식을 찾는 것이며, 따라서 근원적으로 몰이해의 형상이다. 다원성은 서로 닮았지만 영영 다른 것이다. 구분을 폐기하는 것은, 나머지 진리 생산 절차를 꽃다발 마냥 묶어내고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줄기다. 사랑의 주체는 존재의 회색 어둠을 감각적인 것으로 분열시키고, 혁명이 실패한 뒤에는 잔인한 신탁에 따라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진다. 나는 실존의 가장 사적인 사유를 위해 철학을 가져다 쓰는 것에 거리낌 없다. 가장 치열한 정치성은 가장 충실한 사랑과 다르지 않고, 가장 위대한 예술은 가장 세속적인 사랑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해변에 서 있다.


망한 사랑과 망한 혁명과 망한 예술의 쓰레기가 반복해 떠밀려 오는 지저분한 해안가.

내가 사랑했던 네가 조각조각난 채로 떠밀려왔다. 망가진 너는 플라스틱처럼, 내가 밟으면 잠시 휘어졌다가 탄력적으로 복귀한다. 널 밟으며 계속 걷는다. 우리가 종멸한 이후에도. 

인외종의 실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우리 자신은 영원히 모를, 우리의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까지.

망한 후에도,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가능성을 지녔다. 그래서 너는 언제나 낡은 나를 새로이, 새롭게 한다.